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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수첩] K…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알파벳

세계는 지금 ‘K’에 열광한다.     K팝, K뷰티, K 콘텐츠 등 ‘K-’가 붙어 쏟아지고 있다.     열풍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K팝’ 시장은 지난해 해외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9억 달러에 육박했다.     할리우드 불러바드 한복판에 있는 클럽에서도 K팝이 흘러나온다. 〈본지 7월25일자 A-1면〉   관련기사 K팝에 미친 할리우드, 여긴 마치 이태원 현장을 보기 전까지 K팝은 그저 아이돌에 대한 열광이라고 생각했다. 타인종이 아이돌을 보기 위해 콘서트에 가고, 유튜브로 뮤직비디오를 찾아보는 수준인 줄만 알았다. 지난 18일 열린 ‘일렉트릭 서울’ 행사는 생각의 변화를 가져왔다.     아이돌 한 명 없었지만, 모두가 환호했다. 저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큰 스피커로 듣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K팝을 따라 부르고, 그에 맞춰 춤을 췄다. 음악 자체를 즐겼다.     K팝은 독특하다. 힙합이나 전자음악처럼 음악적 특징으로 구분할 수 없다. 한국에서 만든 음악, 한인이 만든 음악이 모두 K팝이다. 그 힘은 남다른 ‘완성도’에 있다.     3~4분짜리 곡을 위해 20명 이상의 작곡가들이 참여한다. 안무도 한 곡을 여러 팀이 나눠서 만든다. 그중 최고의 안무만 뽑아서 쓴다. 가수들은 연습 시 낮과 밤을 가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투혼이다. 이런 열성이 K팝을 독보적인 장르로 만든다.     ‘일렉트릭 서울’의 총괄 프로듀서 이승훈(25)씨는 ‘인섬니악’에 입사한 지 1년도 안 돼 2번이나 고속 승진했다.     그는 K팝 인기는 “한인의 정신력과 열정이 큰 원동력”이라고 말했다.     비슷한 측면에서 최근 LA에서는 한인들이 운영하는 카페가 인기다. 고객들은 한인들의 열정과 전문성을 느낀다고 한다. 미세한 차이를 알고 찾아가는 셈이다.   일부는 ‘K’ 열풍에 싫증을 내고 있다. 한국에서는 각종 공공기관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K-자화자찬’에 질렸다는 반응도 있다. 최근에는 조건 없고, 맥락 없이 ‘한국’을 찬양하는 행태를 비꼴 때 사용되기도 한다.   단,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 하면 ‘김치’ 혹은 ‘강남스타일’밖에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제는 많은 이들이 ‘K’가 붙은 상품을 믿고 찾는다. 무엇보다 ‘K’ 한 글자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비결에는 한인들의 열정과 정신력이 있다. 싫증보단 자긍심을 느껴야 할 때다.     ‘K’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알파벳이다. 정윤재 / 사회부 기자취재 수첩 프리미엄 프리미엄 k팝 음악 한인 아이돌 연습생들

2024-07-29

[취재 수첩] '우정의 종' 보존위의 존재 이유

LA 남쪽 샌피드로 바다를 배경으로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우정의 종을 처음 본 이들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한국의 에밀레종을 본 따 제작된 우정의 종, 그리고 종을 둘러싼 종각까지 지극히 한국적인 모습은 미국의 풍경과 만나 더욱 절경을 이룬다.     안타깝게도 명승에는 대가가 따랐다.     1976년 7월 4일 미국 독립 200주년을 맞아 한국이 미국에 선물한 우정의 종은 바닷바람을 맞는 탓에 유지가 쉽지 않았다. 바닷바람에 포함된 염분은 종과 종각을 빠르게 부식시켰다.     하지만 한국의 상징물이란 이유 하나로 한인들은 자발적으로 나서 애지중지 보살폈다.     1981년에는 ‘우정의 종각 미화위원회’가 발족해 무려 25년 이상을 말없이 봉사했다. 이들은 1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갖고 손수 청소하며 돌봤다.     그리고 2006년 여기저기 흩어져 종을 돌보고 있던 손길들을 모아 만들어진 것이 '우정의 종 보존위원회(이하 보존위)’였다. 보존위는 LA시 공원국과 지역 사회 및 정치 관계자들과 소통하며 적극적으로 우정의 종 활용과 관리를 위해 나섰다.     보존위는 규모는 작아도 우리의 것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연중 5번이나 되는 타종 행사를 진행해왔다.       순수한 마음 위에 세워진 단체인 만큼 이번 보존위의 분규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더욱 안타깝다.     내규를 개정하고 단체명까지 개칭하며 최근 보존위가 시도하고 있는 단체의 쇄신이 LA시 공원국과의 파트너십마저 끊게 하며 무엇을 위한 것인지 미지수다. 단지 이권을 차지하고 싶은 누군가의 욕심은 아닐까.     다른 한인들의 순수한 헌신과 수고위에 세워진 단체에서 마치 자기 것인 양 쥐고 흔드는 것은 파렴치한 것이다.     구태를 반복했던 여느 다른 한인 분규 단체들이 그랬듯 결국 잃어버리는 것은 창립 취지에 있었던 핵심 가치다. 보존위가 욕심으로 얼룩지는 동안 우정의 종 보수는 뒷전이 돼버렸다.     더구나 2013년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마치고 10여년 만에 다시 재보수 시기가 돌아온 상황이다. 기금 모금부터 전문가 섭외, LA시 공원국의 협조, 자원봉사 모집까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다.     과연 보존위는 이 시기에 앞세워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재고해봐야 한다. 단체명을 바꾸는 것인지 아니면 우정의 종을 위한 시의 협조인지 말이다.     우정의 종 보존위원회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우정의 종을 보존하고자 만들어진 단체다. 이름에 맞는 기대를 걸고 다른 한인 단체들은 행사 때마다 혹은 종 보수 과정에서 보존위에 대한 지원을 이어왔다.     이권을 쫓다 우정의 종을 잃어버린다면 더이상 단체가 존재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정의 종 보존위원회, 이름값도 못하는 단체가 되지 않길 바란다.     장수아 기자취재 수첩 보존위 우정 보존위원회 이름값 최근 보존위 이하 보존위

2024-07-11

[취재 수첩] '조나단 사건' 외면하는 한인단체들

참으로 기구한 삶이다. 한 사건 때문에 자녀 둘을 모두 잃었다. 선교사 정정식(82)씨는 “왜 이런 문제가 일어났는지 원인을 밝히고 싶다”고 했다. 지금 롱비치 법원에서는 이 원인을 밝히는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정씨는 지난 2021년 7월 벨가든 지역 바이시클 카지노에서 보안 요원 다섯명이 짓눌러 숨지게 한 조나단 정의 아버지다.     딸 바네사는 오빠가 숨지는 CCTV 영상을 본 뒤 충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씨는 읍소했다. 인터뷰 말미에 “카지노 측은 생명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다. 이 점을 사회가 꼭 알아줬으면 한다”고 했다.   생명에 대한 관심이 없는 건 카지노만이 아니다. 한인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한인 단체, 기관, 정치인들의 존재 이유가 무색할 정도다. 그 흔한 성명 한 장 발표한 게 없다.   한 개인의 억울한 죽음에 분개하자는 게 아니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잘못된 대응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또 다른 조나단은 반드시 생겨난다. 이미 지난 5월 발생했던 양용 사건을 통해서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대응 시스템이 얼마나 부실한지를 보지 않았나.   본지는 약 50분에 이르는 사건 당시 CCTV 영상을 모두 자세히 살펴봤다. 조나단은 욕을 했다는 이유로 카지노에서 퇴장 요청을 받았다. 그 요청에 저항하지 않았고, 주변 사람에게 어떠한 신체적 위협도 가하지 않았다. 게다가 비무장 상태였다. 보안 요원들은 순순히 걸어나가는 조나단을 쫓아가 주차장 구석으로 몰아갔고, 넘어뜨린 뒤 짓눌렀다.     욕설을 한 게 끝까지 쫓아가서 제압할 명분이 되는가. 정신질환을 앓았다 해도 그 당시 조나단이 타인에게 어떠한 해를 가했는가.   검시국은 조나단의 사인을 ‘메스암페타민에 의한 죽음’이라고 했다. 반면, 법의학자들은 ‘제압성 질식(restraint asphyxia)’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 부분은 향후 재판에서 진실 여부가 가려지겠지만, 조지 플로이드도 그렇게 짓눌려 죽었다는 점에서 조나단 사건과 유사한 데가 많다. 당초 조지 플로이드 역시 부검 결과 체내에서 메스암페타민 성분이 검출됐었지만, 결국 목과 등에 가해진 압박으로 인한 질식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 흑인 사회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죽음 이면의 부조리를 향해 목소리를 냈다.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만약 조나단이 흑인이었다면, 이러한 일이 흑인사회에서 발생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봤다.   아버지 정씨는 지금 원인을 밝히고 싶어한다. 이 사회가 그 점을 알아주길 원하고 있다. 한인 단체들이 함께 힘을 보태지 않는다면 제2의 조나단, 양용 사건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장열 기자 jang.yeol@koreadaily.com취재 수첩 한인단체 조나단 조나단 사건 당시 조나단 보안 요원들

2024-06-20

[취재 수첩] 노숙자 정책 방황…시민들도 지쳤다

지난 18일 LA한인타운 인근 길거리 텐트에서 사망한 안태홍씨는 과거 기도원에서 오랜 시간 집사로 봉사했던 인정 많은 이웃이었다. 안씨와 같은 지역에서 텐트 생활 중인 박준씨는 뉴욕에서 사업으로 잘 나갔었다. 그리고 중앙루터교회 앞 텐트에서 거주하는 이강원씨는 과거 노숙자, 마약 중독자 사역을 했었다.     이들 모두 우리의 가까운 이웃이었다. 이제는 멀어진 이웃이다.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도 저마다 사정을 갖고 사회에서 소외되고 멀어졌다. LA시에는 이런 노숙자가 4만여명 있다.     시 정부는 오랜 기간 노숙자 문제 해결을 고민해왔다. 특히 캐런 배스 LA시장은 지난 선거 당시 노숙자 문제 종식을 천명한 바 있다.     취임 직후 노숙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길거리의 노숙자들을 실내 시설로 이동시키는 인사이드 세이프(Inside Safe) 프로그램을 중점 정책으로 추진해왔다. 또 취임 이후 편성한 첫 LA시 노숙자 예산에 13억 달러를 책정했다. 전임자보다 1억4000만 달러를 증액했다.     이처럼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결과는 의문이다. 인사이드 세이프로 약 2600명의 노숙자가 실내 거주지로 이동했지만 이 중 4분의 1 가량이 다시 거리로 돌아갔다. 또한 인사이드 세이프 프로그램의 불투명한 운영이 제기돼 연방 판사와 LA시 감사관이 각각 프로그램에 대한 감사를 진행 중이다.     이 와중에 LA시는 재정적자다. 지난 22일 공개된 내년도 LA시 노숙자 예산은 13억 달러에서 9억5000만 달러로 감축됐다. 예산 감축을 한다면 기존의 운영되던 노숙자 프로그램이 정상 가동할지 의문이다. 지난 15일에는 배스 시장이 시정연설에서 민간에 노숙자를 위한 자금 기부를 요청했다. 특히 부유층의 기부를 강력 어필했다. 시가 재정적자를 겪고 있으니 시민들에게 세금에 더해 또 다른 돈을 호소한 것이다.     이제 시민들도 지쳤다. 처음에는 시의 선행 정책을 반겼을 것이다. 그러나 노숙자에 의한 범죄가 증가하고 실물 경제가 어려움에도 세금이 가중되니 많은 이들이 예전처럼 반기지 않는다. 오히려 불편해한다. 스튜어트 월드만 밸리상공협회(VICA) 회장은 공개적으로 LA타임스를 통해 “노숙자 문제에 이제 사람들이 지쳤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숙자 문제는 단기간 내 해결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다. 배스 시장 스스로가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렇기에 단순히 보여주기식 포퓰리즘 정책이 아닌 중장기 과제로 확실한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자금 확보가 전부가 아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적 공감대를 형해 멀어진 이웃을 다시 가까운 이웃으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김경준 기자취재 수첩 노숙자 정책 노숙자 프로그램 la시 노숙자 기간 노숙자

2024-04-23

[취재 수첩] 재외동포는 호구인가

“재외선거 참여는 당부하면서 유권자의 손발은 묶어 놓았다. 재외선거제도만 도입됐을 뿐 재외유권자를 ‘호구(어수룩해 이용하기 좋은 사람)’ 취급한다.”   한국 제22대 국회의원(총선) 재외선거가 3월 27일~4월 1일 LA 등 세계 곳곳에서 실시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미주 지역 10개 재외공관에 파견된 재외선거관은 선거 준비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총선을 앞둔 한인사회는 조용하다. 한인사회에 재외국민이 다수지만 총선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12년 재외선거제도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 기대와 비교하면 초라할 정도.   참정권 보장이라는 재외선거제도는 등록 유권자를 볼 때 생기를 잃고 있다. 22대 총선 재외유권자 수는 총 14만7989명(재외국민 약 247만 명)으로 2022년 제20대 대통령 선거 때와 비교해 34.6% 줄었다. 2020년 제21대 총선과 비교하면 14% 감소했다.   재외선거 유권자 등록 운동에 나섰던 여러 한인단체는 한국 정치권과 중앙선관위의 ‘일방통행’을 문제로 지적한다. 재외선거제도를 도입하며 한인사회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여론을 반영하는 대신, ‘남의 나라’에서 치러질 선거 부정을 우려해 규제에만 초첨을 맞췄다는 것이다.   그동안 재외선거제도는 복잡한 유권자 등록절차, 현지 지리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은 우편투표 불가 방침으로 재외국민의 불만을 초래했다. 한인사회가 줄기차게 요구하는 우편투표는 허용하지 않고 있다. 한국 면적의 5~10배 이상인 해외에서 지정투표소마저 최대 4곳까지만 허용, 웬만한 애국심이 아니고서는 재외선거에 참여할 엄두가 안 난다는 말이 나온다.   한국 정치권과 중앙선관위는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를 위해 제도 개선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와 관련 중앙선관위는 “재외선거는 국외에서 실시되는 만큼 국내에서 실시되는 선거와 달리 공정성 확보에 상당한 한계가 있다. 국내 선거운동과 달리 국외에서 허용해도 큰 부작용이 없을 것으로 예상되는 선거운동 방법만을 제한적으로 허용한다”고 안내하고 있다. 재외선거 주인공인 재외유권자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특히 공직선거법에 근거한 재외선거운동 규제는 결과적으로 선거참여율을 떨어트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앙선관위에 따르면 선거일 120일 전부터 해외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 또는 비판하는 ‘종이 인쇄물(신문광고,전단,홍보지)’은 원천 금지다. ‘특정 단체나 대표자 명의’로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모든 행위도 금지다. 한국 정당이나 후보가 재외유권자를 대상으로 인쇄매체 등을 통해 선거운동을 하는 행위도 차단됐다.     재외국민 개인 명의로 ▶인터넷 홈페이지 ▶전자우편 ▶문자메시지 ▶전화나 말로 하는 선거운동만 할 수 있다.     한국 여야 정당은 총선 재외선거를 앞두고 공약집을 내놓으면서 “지구촌 재외동포와 함께하고 적극 지원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상 각 정당은 비례대표 후보 발표에서 재외동포를 대표할 후보는 아예 제외했거나 당선권 밖으로 뺐다.     중앙선관위는 ‘제22대 국회의원 재외선거 위반사례 예시 안내’를 강조하며 자칫 주권침해로 보이는 현지 감찰과 조사에 나서고 있다.       현행 재외선거제도를 도입한 정치권과 중앙선관위의 모습은 이솝우화 ‘여우와 학’의 식사초대를 떠오르게 한다. 12년째 재외국민을 위한 잔칫상을 마련했다지만, 주인공을 호구 취급하듯 선거참여 편의증진이나 여론수렴은 외면하고 있다. 재외국민의 소중한 한 표, 민주주의 초석인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한 올바른 제도개선이 시급하다. 김형재 기자취재 수첩 재외동포 호구 재외선거운동 규제 그동안 재외선거제도 재외선거 유권자

2024-03-19

[취재 수첩] 묘비에 남겨진 '위대한' 유산

  120년 전엔 뱃길만 있었다.   인천 제물포에서 출발한 배가 호놀룰루항 7번 선착장에 도착(1903년 1월 13일)한 건 무려 21일 만이었다.   일곱살 짜리 꼬마(김찬재)를 비롯한 아이들 수십명도 그 배에 있었다. 뱃멀미뿐이겠는가. 화장실, 음식, 의복도 변변치 못했을 때다.   그날 배에서 내린 102명은 미주 한인 역사의 첫 페이지를 쓴 이들이다. 세월은 그들의 기록을 닳게 한다. 풍화 작용 탓에 자취는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지워지고 있는 이민 선조의 비명(碑銘)을 여기저기 찾아다녔던 이유다.   배는 제물포와 호놀룰루를 64회나 더 오갔다. 1905년까지 7415명의 한인이 하와이 땅을 밟았다. 그들은 단순히 농장 노동자가 아니었다. 선각자였다.   당시 노동자 월급은 약 16달러에 불과했다. 그들은 그 어려운 상황에서 다 같이 2000달러를 모았다. 300명 이상의 한 달 치 봉급과 맞먹는 액수다. 한인 선조들은 그 돈을 들고 미국 감리교단을 찾아가 학교를 세워달라고 했다. 한인기숙학교는 그렇게 탄생했다.   그들은 멀리 내다봤다. 종일 땡볕에서 일하면서도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알았다. 십시일반 돈을 모아 각 농장의 어린 학생을 선정, 한인기숙학교로 유학도 보냈다. 1909년 첫 졸업생(6명) 중 한 명이 주미대사를 역임했던 양유찬 박사다.   하와이카운티 헤리 김(84) 전 시장의 어머니는 김야물 여사(1984년 작고)다. 사진 신부였다. 먹고 살길이 막막해 김치를 팔며 8남매를 키웠다. 김 여사뿐 아니라 한인들이 여기저기서 김치를 팔다 보니 이제는 김치 자체를 본래 하와이 것으로 알고 있는 이도 많다.   이민 선조들의 마음에는 한국과 미국이 늘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한국에 독립자금을 조달했고, 한편으로는 차세대를 주류 사회로 내보냈다. 가주 최초의 아시아계 주 의원이었던 알프레드 송도 하와이 초기 한인 이민자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 2차 대전 당시 미군으로도 참전했다.   한인 선조들의 이야기는 엄연히 이 땅의 역사다. 이민자의 나라인 미국에서 한 부분을 차지한다. 뿌리를 알면 그래서 당당할 수 있다. 주인 의식도 가질 수 있다. 잊히는 역사를 보존하고 기억해야  할 이유다.   한인 이민 120주년이 저물어간다. 이민사의 초석을 다진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다. 오늘날 한인들은 자부심을 가져도 된다. 선조들의 유산을 누릴 자격은 충분하다. 장열 기자취재 수첩 묘비 유산 이민 선조들 선정 한인기숙학교 한인 선조들

2023-12-29

[취재 수첩] 축제재단의 '동네축구'

요즘 동네축구도 발전했다고 하지만 프로축구와는 견줄 수가 없다.     동네축구와 프로축구의 결정적인 차이는 ‘조직력’에 있다.     동네축구 선수는 공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지만, 프로축구 선수는  ‘있어야 할 곳’으로 뛰어간다.     지난 2021년 배무한 이사장이 부임한 후 이사장 체제로 전환한 LA한인축제재단은 동네축구에 가까웠다.     모두가 있어야 할 곳에 있기보다는 ‘축제’라는 공만 쫓기 바빴다. 개인의 이익과 명예를 위해 팀플레이보다는 그저 개인이 골을 넣기 급급했다.     올해 한인축제는 ‘새로운 50년을 향한 위대한 도전’이란 거창한 표어를 내걸고 출발했다. 그러나 화려했던 50주년의 끝은 구태의 되풀이였다   한인축제의 한 획을 같이한 재단의 최일순 부이사장과 김준배, 박윤숙 이사는 그간 배무한 이사장의 재단 독단 운영 등 혐의를 지적하며 주 검찰에 고발했다.     재단을 멋대로 휘두른 이사장과 그를 고발하며 되려 재단의 민낯을 세상에 드러낸 이사들의 모습은 ‘새로운 도전’을 외쳤지만, 그간 축제에서 지난하게 이어진 실리주의 병폐의 역사를 또다시 반복하는 모습이다.     게다가 젊은 힘이 되어줄 것으로 기대됐던 신임 이사들은 오히려 오랜 연륜의 이사들에게 ‘사퇴’를 권하며 그것이 축제의 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주장했다.     7명 이사 각자가 이 모든 게 ‘축제를 위해서’라고 말한다. 축제가 잘 되기 위해 본인들이 정의를 바로잡는 것이고 불의와 싸우는 것이라는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이사들 모두가 정의를 주창했던 축제는 아이러니하게도 파행으로 끝났다.     제아무리 최고라도 스트라이커만 모인 축구팀은 결코 우승할 수 없다. 그것은 골도, 팀의 우승도 모두 놓치는 최악의 플레이가 될 것이다.     이사들은 LA한인축제를 ‘내가 바꾸겠다’는 사명감보다 자신의 자리에서 주어진 직임부터 다하는 기본적인 자세가 진짜 축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길이다. 장수아 기자취재 수첩 축제재단 동네축구 동네축구 선수 최일순 부이사장 요즘 동네축구

2023-12-28

[취재 수첩] 무연고자와 라면 한 봉지

무연고자 박철언(64)씨의 삶은 늘 쓸쓸했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 만큼은 외롭지 않았다.   지난 7일 세인트제임스교회 김요한 신부가 열어준 장례식은 조촐해도 온정이 가득했다. 〈본지 12월21일자 A-1면〉   노숙자, 무연고자와 같은 소외 계층은 우리 주변에 늘 있다. 중요한 건 박씨와 같은 안타까운 일이 또다시 생겨나선 안 된다는 점이다.   취재가 끝나고 셸터를 운영 중인 김 신부에게 물었다. 이 문제의 해결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구체적인 방안을 듣는가 했는데, 답변은 의외로 단순했다.   “라면이랑 생필품이 필요하죠. 아, 담배도….”   김 신부는 “이 사람들 돌보는 건 사실 별것 없다”며 “일반인이 가진 ‘의지’라는 게 별로 없기 때문에 데리고 살면서 사고 안 치고 잘 먹고 잘 자는 일이 가장 중요할 뿐”이라고 말했다.   한인타운에서 셸터 사역을 펼친 지 15년 째다. 지금까지 약 300명 정도의 노숙자가 김 신부의 셸터를 거쳐 갔다.   그 중 살아보겠다고 의지를 갖고 취직까지 한 사례는 30명이 채 안 된다. 갱생 비율이 10%에도 못 미치는 셈이다.     나머지는 뚜렷한 목적 없이 하루를 그냥 살아가는 이들이다.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거나, 다른 이들과 싸우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셸터에서의 삶이 답답해서 다시 거리로 뛰쳐나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 신부는 돈 얘기를 꺼내는 것도 싫어했다. 오히려 재정 지원을 받는 게 불편하다는 입장이다. 돈을 받게 되면 도움을 주는 이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니까 그보다 음식이나 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LA시의 노숙자 정책도 슬쩍 꼬집었다.   김 신부는 “노숙자 문제라는 건 돈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어쩌면 셸터가 이 사람들에겐 또 하나의 감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의 현실을 파악하고 어느 정도 유연한 접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마디를 덧붙였다. 정부와 달리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했다.   그는 “굳이 돕겠다면 셸터에 와서 여기 사람들과 몇 마디 대화나 좀 해주고 잠시라도 시간을 보내주면 좋겠다”며 “이들은 가족도 없지 않나. 사람 간에 어떤 인정을 느끼게 되면 바뀔 수도 있다”고 했다.   무연고자에게 필요한건 거창한 지원이 아니다. 라면 한 봉지, 대화 몇 마디면 충분할 수 있다. 제2의 박철언씨가 나와선 안 된다. 장열 기자취재 수첩 무연고자 봉지 노숙자 무연고자 무연고자 박철언 봉지 대화

2023-12-22

[취재 수첩] 이해못할 살해범 형량 '5년'…개스콘의 설명이 필요하다

“조지 개스콘 검사장 등 LA카운티 검찰은 정의를 바라는 우리들의 요구를 외면했다. 대낮 LA다운타운에서 대범하게 살인을 저지른 이들은 성인으로 간주해 재판받게 해야 한다.”   한인 개인 및 단체, LA 시민, 변호사 모두 허탈함과 분노를 표했다. 지난 5일 LA카운티 소년법원은 지난해 LA다운타운 자바시장 한인 업주 고 이두영(56)씨를 흉기로 살해한 10대 용의자 2명 중 1명(여)에게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본지 12월 7일자 A-1면〉 피고인에게 우발적 살인 혐의가 적용됐지만, 범행 당시 미성년자인(17세) 점을 고려한 선고라고 한다.   이두영씨 피습 살인 사건은 LA지역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작년 10월 1일 오후 1시쯤 고인은 평소처럼 가발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당시 17세였던 남녀 2명은 고인의 가게로 들어와 물건을 훔쳐 달아났고, 고인은 이들을 쫓아가 거리에서 몸싸움을 벌였다. 결국 용의자 중 1명(남)이 휘두른 흉기에 고인은 목숨을 잃었다.   살인사건이 벌어진 장소는LA다운타운 메이플가와 올림픽 불러바드 교차로 인근 메이플센터 거리. 평소 수많은 시민이 오가는 자바시장 중심가다. 지역 상인과 시민단체는 LA시와 경찰국이 평소 치안강화를 요구한 목소리를 외면하고, 잦은 강·절도를 방관한 결과라며 개탄했다. 이들은 범행 용의자 엄벌을 촉구했다.   사건 발생 4일 뒤 조지 개스콘 LA카운티 검사장은 용의자 2명을 살인 및 2급 강도 혐의로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개스콘 검사장은 비판여론을 의식한 듯 “LA다운타운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이씨가 대낮 분주한 거리에서 살해당했다”며 “비록 용의자들이 미성년자일지라도 그들이 저지른 죄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개스콘 검사장이 강조한 말은 실망감만 키우고 있다. 이번 재판 결과를 놓고 많은 이들이 ‘사법정의’에 회의를 나타낼 정도.     익명을 원한 한 변호사는 “소년법원이 미성년자에 준한 판결을 내렸다면 어쩔 수 없다”고 전제한 뒤 “하지만 범행 수법을 볼 때 동의하지는 않는다 5년형 선고는 적게 보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한 비영리단체는 “한인의 생명을 그 정도로밖에 보지 않는 끔찍한 판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재판 결과를 지켜본 이두영씨의 외동딸 이채린씨는 목이 메었다. 세상에 홀로 남게 된 채린씨는 담당 검사의 윗선 눈치보기 분위기를 전한 뒤, 아버지를 흉기로 찌른 남성 용의자라도 반드시 성인범으로 간주돼 처벌받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채린씨에 따르면 검찰은 사건의 경중을 반영해 성인범 간주 또는 미성년자 기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고 한다. 7일 LA카운티 검찰은 언론이 요청한 개스콘 검사장의 입장발표를 미루고 있다. 개스콘 검사장이 나설 때다. 김형재기자취재 수첩 la카운티 살해범 개스콘 검사장 la카운티 소년법원 la카운티 검찰

2023-12-07

[취재 수첩] 배스 시장, 자기 사람만 쓰나

캐런 배스 LA시장의 인재풀은 생각보다 좁았다.       그는 취임 2년 차를 이끌 신임 비서실장에 캐롤린 웹 드마시아스를 최근 임명했다. 2기 시정부 조각이 시작된 셈인데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실망스러운 인선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은 취임 직후 미리 에릭 가세티 전임 시장의 수뇌부들에게 최소 6개월 동안은 자리를 지켜달라고 요청했다. 이때만 해도 능력 있는 인재들을 기용할 것이라는 희망을 시민들에게 줬다. 하지만 결국 이후 이어진 인사 발표에서는 특정 인종 편중, 전임 시장 시절 인물들 재활용, 자신이 설립한 ‘커뮤니티 코얼리션(CC)’ 출신이라는 공통분모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드마시아스 신임 실장처럼 CC 출신에 전임(비야라이고사 시장) 정부 출신이며, 74세의 흑인 여성이라는 것이 오히려 크게 화제가 되지 않는 배경에는 바로 시청 안팎에서 떠도는 ‘CC 출신 불패’라는 비아냥이 자리한다.     커뮤니티에서 비영리 단체는 그 목적과 활동 반경에 맞게 주민들과 특정 계층을 위해 일을 한다. 하지만 시청 일은 조금 다르다. 시민 중에는 부자들도 있고,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홈리스도 챙겨야 하지만 하루하루 노동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목소리 없는’ 시민들도 돌봐야 한다. 시민들이 배스 시장을 선출한 이유도 그것이었다.     시장은 시청 책임자들이 꼭 CC 출신이어야 한다는 인상을 더 주지 말아야 한다. 대학에도 기업에도 연구 단체에도 인물들은 많다. 왜 그들이 지원하기만 기다리고 있는가. 먼저 찾아 나서 그들이 시청에서 봉사하도록 하는 노력은 없냐는 질문을 시민들은 던지고 있다.     물론 기용된 보직자들의 인품이나 능력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역시 전임 시장과 CC 출신이기 때문에 갖는 강점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시민은 더 다양한 풀을 통해 참신한 인물들이 발탁되길 기대하고 있다. 지금 분위기라면 언제 누가 선임돼도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반응이 나올 것이다.     시장은 한인사회를 방문했을 때 항상 ‘함께 일하자’ ‘지원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결국 한인들의 기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왜 지원하지 않는지 시장실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왜 ‘CC 사단’이라는 말이 자리를 잡았는지 고민해 볼 일이다. 이민자, 아시안, 소수계에도 인재들이 적지 않다. 이들을 기용하는 것은 소수계 주민들의 시정 참여를 넓히는 일이다.     한인 언론이라서 한인을 기용하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인사 정책의 기준을 쇄신하고, 다민족 사회에서의 원활한 시정을 위해 균형을 잡아달라는 이야기다. 최인성 기자취재 수첩 배스 시장 배스 시장 전임 시장 캐런 배스

2023-11-21

[취재 수첩] 단소 운영에 한인들은 '들러리' 인가

지난 16일 LA라인호텔, 흥사단 옛 본부 건물(단소) 활용에 관한 설명회가 열렸다. 〈본지 8월 17일자 A-3면〉   단소를 매입한 한국 국가보훈부가 주최한 행사다.   국가보훈부 황의균 보상정책국 국장의 단소 활용 방안을 듣던 중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공개 석상에서 분명하게 선을 긋는 듯한 발언 때문이다.   황 국장은 “리모델링이 완공될 때까지 단소 유지, 관리는 한미유산재단에서 도움을 줄 예정”이라며 “리모델링 완공 후 개관이 되면 대한민국 정부에서 직접 프로그램 운영과 시설물 관리를 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한미유산재단은 차만재 교수(캘스테이트 프레즈노)가 설립했다. 단소 관리를 위해 미주 한인을 중심으로 급히 설립된 비영리 단체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단소의 보수 공사 및 복원 작업 완료 목표 시한은 오는 2025년 8월이다.   황 국장의 발언대로라면 한미유산재단의 역할은 일단 공사가 끝날 때까지다. 이후부터는 한국 정부가 직접 관리를 맡겠다는 것이다. 개관 이후 단소 운영에 있어 한인사회의 역할이 불분명한 셈이다.   공사는 이미 지난달부터 시작됐다. 어쨌든 한미유산재단이 공사 완료 때까지 관리를 맡겠다니 차만재 교수에게 운영 계획 등을 물었다.     차 교수는 “시공 업체나 복원 비용 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모르겠다”며 “국가보훈부에서 연락이 와서 최근 비영리 단체를 설립한 것”이라고 답했다.   한국 정부와 한미유산재단 간 관리 방안 등을 두고 구체적인 논의가 오갔던 것인지 의문이다.   사라질뻔한 단소를 매입한 건 한국 정부지만, 철거 위기에서 몸으로 막아선 건 미주 한인들이다.     이날 축사를 한 김영완 LA총영사도 풀뿌리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단소 보존에는 한인들의 수고와 노력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단소 보존은 한국 정부와 미주 한인들이 함께 이뤄낸 쾌거다. 그래서 더 뜻깊다. 향후 단소 관리 및 운영 역시 함께해야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다. 한인들은 ‘들러리’가 아니다. 장열 기자취재 수첩 들러리 단소 단소 활용 미주 한인 단소 유지

2023-08-17

[취재 수첩] 한국말 '실종된' 광복절 행사

지난 8월 11일 오전 LA시의회에서는 금요일을 맞아 다민족 축하 자리가 펼쳐졌다.   시의회 방문객들의 박수가 넘치고 그들이 가진 고유의 예술과 역사를 함께 나누는 시간이었다. 이날은 존 이 시의원이 한인들을 초대해 광복절을 축하받는 순서도 있었다.     회기 첫 순서로 밥 블루맨필드 시의원이 리틀도쿄의 니세이 축제를 찾은 자매도시 나고야 시장 일행을 소개했다. 카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영어로 자신을 소개하고, 탐 라본지 시의원과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어서 소개받은 다카유키 나리타 나고야 시의장은 자신을 영어로 소개하고는 이후 일본어로 소감을 밝혔다. 통역이 있긴 했지만, 그가 모국어로 말하며 LA 시의원들과 눈 맞춤을 이어가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두 번째로 시의회를 채운 축하는 페르난도 발렌수엘라 전 LA다저스 투수가 차지했다. 그를 소개하던 유니세스 헤르난데스 시의원은 중간중간 지명과 정보를 스패니시로 묘사했다. 발렌수엘라도 초입에 영어로 소감을 밝혔지만, 후반에는 스패니스로 더 깊은 이야기를 이어갔다.     반면 한인사회의 광복절 소감은 모두 영어로 진행됐다. 존 이 시의원, 제임스 안 한인회장, 김영완 총영사까지 모두 영어로만 진행됐다. 물론 역사적인 사실들에 감동까지 발표문에 넣어 정확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은 의미 있다.   하지만 3명의 한인 대표가 연설했다면 이 중 한 명 정도는 한국어로 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민족 커뮤니티의 축하 자리에 어떤 전략이나 과도한 계산이 들어간다면 불편해질 수 있지만, 김치, 태권도, 한식의 날이 자리 잡은 캘리포니아 LA인데 이날 이 자리를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자리로 활용할 수는 없었을까.     이날 일본인들과 라티노들이 사용한 모국어에서 기자가 그들만의 자부심이 느껴졌다고 하면 지나친 해석일까.     한글 일간 신문이 50년째 인쇄되고, 수백여 명의 한국어 교사들이 학생들을 지도하는 가주에서 한인사회를 대표해 연설하는 기회가 생긴다면 한글을 좀 더 알리고 자랑하는 방식으로 해보자.   이런 조그만 노력이 커뮤니티 안으로는 2~3세들에게 자긍심을 선사하고, 밖으로는 한인 사회 홍보에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다.   최인성 기자 ichoi@koreadaily.com취재 수첩 한국말 광복절 광복절 행사 광복절 소감 블루맨필드 시의원

2023-08-16

[취재 수첩] 리들리-토머스의 '꼼수'

가톨릭 학교 ‘이마큘릿 하트 칼리지’는 설립 이념이 ‘믿음, 희망, 행동’이었다. 1970~80년대 학교를 이끈 수녀들은 사회 이슈에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설 정도로 ‘행동하는 양심’이었다.  마크 리들리-토머스(이하 MRT) 시의원이 사회학과 종교학을 공부하며 ‘사회 변화’를 꿈꾸던 곳이다.     2002년 가주 하원을 시작으로 20년 동안 사우스LA의 주요 선출직을 거친 MRT가 정치역정 최대의 기로에 섰다. 바로 ‘사심’ 때문이다.     그것도 카운티 주민들이 낸 세금을 거래했고, 아들이 USC 교수가 되도록 작업했고, 아들이 운영하는 단체에 보내는 기부금을 대학을 통해 세탁하려 했다.     이 정도 되면 정객들은 자숙하며 벌을 달게 받겠다고 말해야 맞다.     하지만 MRT는 ‘역습’을 택했다. 친구들을 동원해 변호비용 150만 달러를 모았다. 선출직 공무원인 자신의 사적인 욕심이 연루된 재판의 변호 비용을 공개적으로 정치인과 기업에서 거두는 것도 놀랍다. 더 나아가 사우스LA의 대표적인 교회에서 집회를 통해 사실상 무죄 투쟁을 시작했다. 친한 목사는 ‘이 정도는 봐줘야 한다’는 뉘앙스로 기도를 올린다.     미국의 형법재판은 검찰이 실질적인 증거를 제시해 용의자의 죄를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이것이 안 되면 판사나 배심원들은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한다.     남가주 주민들은 OJ 심슨의 ‘맞지 않던’ 장갑을 기억한다. 무리한 수사와 부실한 증거는 무죄 방면을 뜻할 수도 있다. MRT가 노리는 수는 바로 이것이다. 유죄 인정을 통해 의원직, 명예, 인맥을 모두 잃기보다는 배심원의 의견 불일치를 통해 검찰의 증거 입증을 무력화하겠다는 전략이다.     흑인 커뮤니티의 민권 운동은 모든 소수계가 기억하고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MRT가 남긴 여러 업적에도 경의를 표한다. 하지만 그의 이번 법정 전략이 후세들에게 부끄러운 ‘꼼수’ 전략으로 기억되지 않길 바란다. 그 옛날 그를 가르친 수녀 선생님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 될 터이니 말이다. 최인성 사회부 기자취재 수첩 리들리 토머스 마크 리들리 사회학과 종교학 증거 입증

2023-03-09

[취재 수첩] 매즈칼 한잔 합시다

과테말라 국경에 인접한 멕시코 남부 오하카는 증류주 매즈칼(Mezcal)로 유명하다. 특정 원료를 고집하는 데킬라(Tequila)와 달리 매즈칼은 30개의 다양한 용설란(Agave)에서 발효되며 광범위하게 소비된다. 증류도 한번으로 끝낸다. 데킬라가 특화된 고급주라면, 매즈칼은 민초들을 위한 ‘국민주’다. 그 값도 3~4배 차이가 난다.   최근 LA 시의원들의 녹취는 사적인 발언이지만 오하칸을 비하하는 정서를 명백하게 보여줬다. 한인타운 거리에 피부가 까맣고 키작은 ‘오하칸 코리안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매우 못 생겼다’는 부연까지 섞어서 말이다. 해서는 안될 말이 공개된 것이다.     라틴계 정객들은 선거마다 시민들에게 ‘화합’과 ‘자부심’을 강조했다. 서로를 이해하자며 피부색과 언어가 달라도 함께 일할 수 있는 것이 우리의 강점이라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이들의 속내는 그렇지 않았다.     권력과 영향력으로 지역구 경계선을 좌지우지하고, 기업과 폭력조직으로부터 로비자금을 받았다. 산적한 문제들은 이들의 당선 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이런 ‘권력 카르텔’을 부수는 작업은 라틴계 커뮤니티에서 시작돼야 한다. 힘과 영향력이 모이면 부패가 시작되는 것처럼 잘 뽑기도 해야 하지만 뽑은 뒤에 감시 작업도 중요하다. 한인들도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우리가 뽑은 시의원들이 으쓱해진 어깨에 걸맞게 값비싼 데킬라에만 취한 것은 아닐까. 그래서 그 옛날 복국집 누구처럼 “우리가 남이가”를 연발하며 ‘키작고 피부색 짙은 오하칸과 코리안’을 우습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시의원들은 물론 한인사회 안팎의 리더들이 모여 매즈칼을 한번 마셔보면 어떨까.     다양하면서도 숙성된 풍부한 문화를 어떻게 존중하고 기억해야 하는지, 그것이 우리 후손들에게 어떻게 남아야 하는지 절실히 고민하면서 말이다. 최인성 부국장취재 수첩 오하칸 코리안들 라틴계 커뮤니티 한인타운 거리

2022-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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